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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동네 울타리 밖에 모르던 초등학생 시절, 우연히 세종문화 회관 앞의 스케이터들을 본 후로 스케이트보드와 스노우보드를 시작했다. 당시에는 무언가에 홀려 점점 깊숙이 보드 라이프에 빠져 들었다. 그러던 중 중학교 2학년 때의 겨울, 휘닉스파크에서 스노우보딩을 하고 있던 어느 날 비가 많이 내려 카페테리아에서 쉬고 있을 때 운명적인 영상들을 보게 됐다.

1998년 나가노 동계올림픽 스노우보드 하프파이프 중계 방송이었는데 와타나베 신이치(Watanabe Shinichi), 유시 옥사넨(Jussi Oksanen), 토드 리차드(Todd Richards), 다니엘 프랑크(Daniel Frank) 같은 엄청난 선수들의 경합 장면을 보며 큰 충격을 받았다. 이후 중3 때 참가하게 된 지쇼크(G-Shock) 빅에어/하프파이프대 회에서 성인 선수들과 경합을 벌였고, 프런트 사이드 360(Front side 360)을 성공시키며 4위에 입상했다. 이 일을 계기로 나는 대한체육회/대한스키협회에서 만든 최초의 스노우보드 국가대표/상비군팀에 속하게 됐고 고등학교도, 대학교도 모두 스노우보드 특기 생으로 진학하게 됐다.

2002년 솔트레이크, 2006년 토리노 동계올림픽 출전을 위해 전 세계 곳곳에서 열리는 대회를 돌며 월드컵 포인트를 모았다. 나 자신의 한계와 싸워가며 새로운 기술들을 습득했고 고국에 대한 향수, 몇 차례의 부상, 큰 수술을 이어가며 평생 잊지 못할 추억들을 얻게됐다. 하지만 당시 국내 상황은 아직 세계 무대와 많은 격차를 가지고 있었다. 월드컵을 비롯한 기타 국제 대회를 유치하거나 개최할만한 여력은 물론 준비, 인력, 관심 등 모든 것이 부족했다. 그래서 월드컵 포인트 관리가 매우 어렵고 힘들었다.

2006년 토리노 동계올림픽이 끝날 무렵 대한체육회와 국내 스포츠계는 대한민국 평창에서 동계올림픽 유치를 하기 위해 본격적인 준비를 시작했다. 함께 경쟁하던 밴쿠버와 소치는 각각 2010년과 2014년 내리 먼저 유치했고 그동안 전성기였던 나의 20대도 자연스럽게 지나가며 선수 생활을 내려놓게 되는 시간이었다.

2007년 채널 XTM에서 평창 올림픽 유치에 앞서 대중들에게 스노우보드를 알리기 위해 스노우보드 리얼리티 드라마를 찍었다. 만약이라는 가설은 사실 어떠한 경우에도 대입할 수 있지만, 만약 이 때 더 적극적인 투자가 있었더라면, 그리고 시기상 2010년에 밴쿠버가 아닌 평창에서 동계올림픽이 개최되었더라면 그때의 선수들, 그리고 현재의 한국 스노우보드 업계의 수준과 대중의 시각, 문화 등이 총체적으로 매우 발전했으리라고 생각한다. 당시 그 드라마는 나름의 선방을 했고 실제로 대기업들의 스노우보드 업계에 대한 투자도 늘어났다. CJ나 SK 등에서 실업팀이 거론되기 시작했고, 선수 층도 지금보다 네다섯 배는 많았다. 하지만 아쉽게도 2010년 동계올림픽 개최가 무산되자 모든 것은 하얀 연기처럼 사라지고 말았다.

2008년부터 2012년까지를 한국 스노우보딩 암흑기라 생각한다. 이전까지는 스키, 스노우보드의 인기에 힘입어 각종 장비 수입 업체들과 관련 사업들이 호황을 누렸지만 2008년부터 하락세에 접어들었다. 각 종목 별로 두각을 나타내던 선수들 역시 하나둘 스노우보드 업계를 떠나기 시작했고, 그로 인해 자라나는 한국 스노우보드 선수들에게 다양한 경험과 노하우를 직접 보여주거나 전해주지 못하는 결과로 이어지고 말았다. 마침 그 무렵에서야 평창 동계 올림픽의 유치가 확정됐다. 드디어 그 꿈의 무대가 대한민국 평창에서 열리게 된 것이다.

2016년, 나는 이제 선수로서 참여할 수는 없지만 후배들의 조력자로서 세계 모든 이들이 주목하고 있는 스노우보드 종목에 관련 된 일을 한다. 선수로서 풀어내지 못했던 올림픽 무대. 한 번도 밟 아 보지 못했던 꿈의 무대인 올림픽이 나의 홈 스팟, 홈 그라운드 리조트인 휘닉스파크에서 펼쳐진다. 비가 구슬프게 내리던 19년 전 어느 날 카페테리아의 TV를 통해 보던 하프파이프 경기를 이 제 이곳에서 직접 내 눈으로 확인하게 될 것이다. 수많은 기억들이 떠오르며 벌써 가슴이 벅차온다. 부디 이번 대회로 대한민국 스노우보딩의 모든 것들이 많은 발전을 이루어 긍정적인 변화로 이어 지기를 소망한다.

 

 

prf
조성우
2018 평창 동계 올림픽 하프파이프 코스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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