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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와 라이딩의 기로에 서다

Moon

말도 못하게 기쁜 일 하나. 2015년 가을, 나의 아이가 태어났다. 이쁜 딸. 이제는 옹알옹알 말도 하고 배시시 웃고 아장아장 걸어다니는 내 딸이 폭풍 성장 중이다. 하루하루 달라지는 모습을 볼 때 마다 너무 행복하고 감사할 따름이다.

말도 못하게 기쁜 일 둘. 2016년 봄, 나를 위한 최고의 선물을 했다. 남자라면 누구나 꿈꾸는 BMW 오토바이. 집에서 사무실까지의 거리는 고작 15분에 불과하지만 신호가 잘 맞아 속도를 높힐 때면 영화 ‘비트’의 우성이 형이 된 듯한 느낌을 받는다. 동호인들과 2016 년이 가기 전에 오토바이 투어를 떠나자고 철썩같이 약속했지만 결국 집과 사무실 사이의 왕복 10km 거리만 통근하다 지나가버렸다. 모처럼 쉬는 주말이면 말도 못하게 기쁜 일 하나와 둘이 서로 힘 겨루기를 한다. 평일에는 기껏해야 한 시간 남짓 같이 있을 수 있는 아기를 더 보고 싶다가도, 라이더의 피를 끓게 하는 오토바이만 쳐다보면 몸이 근질근질해진다. 아빠와 라이더의 기로에 서서 이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1년 넘게 계속하고 있다.

아빠의 육아가 엄마처럼 대단하지 않다는 것은 확신한다. 특히나 생후 채 36개월이 지나지 않은 아기를 돌보는데는 뭔가 뚜렷한 활동이 필요하지도 않다. 그저 함께 있어 주는 것만으로 아기와의 유대감을 늘리거나 아빠라는 존재를 인지시키는 일이 전부다. 사실 아기 엄마가 육아에서 해방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라는 점이 아빠 육아 시간의 가장 큰 의미일 수도 있다.

그래서 쉬는 날 만큼은 아내의 행복을 위해서라도 의무감을 가지고 아기와 함께한다. 큰 불만은 없다. 내 아기이고 사랑하는 사람을 위한 일이니까. 문제는 나의 20대와 30대 취미 생활의 대부분이 스노우보드와 캠핑, 스쿠버다이빙 등 아웃도어에서 이뤄졌다는 점이다. 심지어 최근에는 정점을 찍어보려고 오토바이까지 샀으니 육아를 하다 보면 온몸이 근질거리는 게 당연하다. 하지만 나만의 시간을 허락 받는 일이 평온한 가정에 화를 불러온다는 점을 알고있기에 절대 말하지 않는다.

솔직히 한 번은 거짓말을 했다. 일을 나간다고 하고 아침 일찍 지인들과 오토바이를 타고 춘천을 간 것이다. 오후 일찍 조용히 돌아오자는 계획이었지만 돌아오는 길에 예상치 못한 비를 만나는 바람에, 차마 사무실에서 왔다고는 할 수 없는 몰골로 돌아가 이실직고를 해야했다. 아내에게 용서를 구한 뒤 가족의 눈치를 살피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던 날, 오랜만에 느끼는 근육의 뻐근함에 나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수많은 아빠들이 나와 같은 고민을 하고, 종종 나처럼 거짓말도 하고, 나와 같은 이유로 아내와 다투기도 할 것이다. 분명한 사실은 둘 모두를 내가 몹시 사랑한다는 점이다.
살아오면서 수많은 선택을 강요받아온 것 같다. 입장을 분명히 하지 않으면 손가락질을 받는 게 요즘 세상이다. 그래도 이번만큼은 아슬아슬한 경계에서, 그 팽팽한 긴장감을 즐기며 둘 모두를 놓치고 싶지 않다. 나를 비롯해 좀 더 현명한 아빠 혹은 라이더가 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든 이들에게 용기(!)와 박수를!

 

 

prf
문희배
소품(Sopooom) 매니저

● THE ReeAL MAGAZINE VOL.13 CROSSROA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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