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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로부터 해방을 꿈꾸다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서른세 살 한 청년의 다이어트에 관한 이야기를 시작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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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6년으로 기억한다. 지금으로부터 9년 전, SBS 인기 예능 프로그램 <진실게임>에 출연했다. <진실게임>은 매주 새로운 주제로 일반인 출연자들의 사연이 ‘진실’ 인지 ‘거짓’인지를 판별하는형식의프로그램이었다. 총 여섯 명의 출연자 중 단 한 명이 ‘진실’이었고, 주제는 ‘가장 단기간에 OO를 이룬 사람을 맞춰라’였는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게 바로 나였다. 이른 아침부터 시작된 녹화는 저녁까지 이어졌고, 연예인 패널들의 예상을 뒤엎고 내가 진실로 밝혀졌다. 20일만에 30kg을 감량한 사연의 주인공이 바로 나였던 것. 방송이 나가자 싸이월드 조회수가 급증했고, 재학 중이던 대학교 캠퍼스에선 연일 내 이야기가 화제였다. 학교와 유명 은행의 홍보 모델 등을 하며 대내외로 훈남 이미지를 풀풀 풍기고 다녔기에 100kg의 거구는 상상이 안 된다는 반응이었다. 지방 흡입술, 성형 수술 등 많은 루머들이 돌았지만, 모두 사실무근이었다.

+20kg

대학 졸업 한 학기를 앞두고 런던으로 1년 과정의 어학연수를 떠났다. 솔직히 고백하건대 어학 연수라기보단 장기간 여행, 혹은 현실 도피였다. 성인이 되었지만, 무엇을 해야 할지, 뭘 잘할 수 있을지 고민이 앞섰고 생각을 정리한다는 심산으로 무작정 비행기 티켓을 끊었다. 제대로 된 준비없이 떠난 여정은 시작부터 순탄치 않았다. 도착하자마자 몸이 아파 병원을 겨우 찾아 손과 발을 총동원해 의사소통을 했다. 그런 일이 액땜이라도 된 듯, 런던 생활 두 달째부터 외국 친구들을 사귀게 되면서 자연스레 영어가 늘었고, 추억들이 하나둘 늘어갔다. 밤새 클럽에서 놀고 나이트 버스를 타고 귀가한다든가, 사설 영어 학원 수업을 마치고 친구들과 공원에 누워 맥주를 마시며 웃고 떠들거나 감자 튀김에 식초를 뿌려 먹는 게 일상이 되었다. 어느새 행복하고 설렜던 1년이 훌쩍 지나 한국으로 돌아가야하는 순간이 다가왔다. 그럴 수록 나는 먹고 마시는 것으로 그 아쉬움과 서운함을 달랬다. 그 사이 체중은 20kg이 늘었다.

-20kg

귀국 소식을 듣고, 친구들로부터 만나자는 연락이 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나는 만날 수가 없었다. 트렌디한 패션의 도시 런던을 경험하고 온 나에 대한 주변 사람들의 기대치를 알고 있었던 것. 나는 대학에서 경영학과 패션을 동시에 전공하고 옷에 대한 관심이 유독 남달랐다. 몸에 잘 맞고 몸의 실루엣을 잘 드러내는 옷을 입고 다니기로 친구들 사이에선 유명했다. 이를테면 그 당시 유행했던 스키니진을 남들보다 몇 년 앞서 교복처럼 입었었다. 더는 스키니진이 몸에 딱 맞는 바지가 아니라, 피를 통하지 못하게 하는 바지가 된 지금의 슬픈 현실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친구들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아니, 나 자신의 자존심을 세우기 위해 만남을 잠시 미뤘다. 그리고한 달 만에 다시 20kg을 감량했다. 보란 듯이 스키니진을 입고 친구들을 만났고, 여전히 날씬하고 더 멋있어졌다는 말을 듣고서야 안도감을 느꼈다.

+15kg

사회생활은 유명 아웃도어 업체 마케터로 시작했다. 연예인과 톱모델들 광고 촬영은 물론 스타 마케팅, 매거진 PR을 담당했기에 그야말로 한국의 쭉쭉빵빵 셀러브리티들과 만날 기회가 많았다. 자연스럽게 내 외모 관리에도 신경을 쓰게 되었다. 2년쯤 일하고 패션 에디터라는 새로운 직업을 선택했다. 직업의 특성상 나 자신도 한 명의 셀러브리티가 될 좋은 기회라 생각했다. 그럴수록 살 찌는 것에 대한 두려움, 살이 찌면 안된다는 강박증에 시달렸다. 30대가 되니 몸은 예전 같지 않았다. 야식은 에너지가 아닌 순도 100%의 지방으로 축적되었고, 한번 찐 살은 쉽사리 빠지지 않았다. 20대처럼 운동을 열심히 하지도 않은 터라 살은 다시 빠른 속도로 찌기 시작했다. 1년 새 체중은 15kg이 늘었다. 몇 년 전의 그 날렵한 몸매 대신 후덕한 아저씨가 돼버렸고 어느  순간 나는 나 자신을 놓았다. 남자도 관리해야 한다고 글을 쓰는 패션 에디터로서 자기 자신을 관리하지 못했다는 자책이 더해지는 상황. 그렇게 서른세 살을 맞았다.

+-??

하루가, 한 달이, 1년이 지날수록 남자도 관리해야 한다는 건 사회 전반적인 분위기가 되고 있는 상황. 나의 지극히 개인적인 이 이야기에 ‘뭐 그리 살찌는 것에 민감하냐?’고 반문을 던지는 이에게 고백 하나를 더 보탠다. 1983년, 8개월 미숙아로 태어나 2.0kg의 몸으로 세상에 나온 뒤부 터 1년을 인큐베이터에서 살았다. 여섯 살이 되었지만, 또래보다 왜소하고 마른 모습에 가족들의 걱정은 그칠 줄 몰랐다. 그래서 전국의 유명 한의원에서 끊임없이 보약을 지어 먹었고 여덟 살이 되면서 제대로 약발(?)을 받았다. 그 이후 ‘보약먹고 살쪘어요’라는 말에 몸소 공감하는 일인이 되었고,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 3학년 100kg이 될 때까지 한 번도 외모 칭찬을 들어본 적이 없다. ‘돼지’라는 별명이 꼬리표처럼 붙었고 그게 마치 내 운명인 것처럼 체념하며 살았다. 그러다 스무 살이 되던 해, 새 삶을 살고싶다는 생각에, 20일만에 30kg을 감량했다. 그 이후로 ‘살’ 이라는 것에 울고 웃는 삶을 살게 되었다. 애석하게도 한 번 바뀐 살 찌는 체질을 반대로 바꾸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스무 살 이후부터 줄곧 저녁 6시 이후 먹지 않기, 음식은 서른 번씩 씹기, 커피는 아메리카노만 마시기, 밥은 반 공기만 먹기 등등 셀 수 없는 다이어트 법칙들을 만들어 삶에 적용했다. 고무줄 몸무게로 10년을 살아가니 이제 지친 순간이 왔다. 몸무게라는 숫자에 갇혀 내가 놓친 것들이 무엇인지. 마치 날씬한 몸매가 행복의 전부인 것처럼 살아온 건 아닌지 자신에게 묻게 된다. 지금도 나처럼 다이어트의 성공과 실패를 오가는 사람, 혹은 다이어트를 평생 업으로 사는 이에게 하나만 묻고 싶다. 왜그렇게 살을 빼려고 하는 건지? 어쩌면 사회가 만들어 놓은 미의 기준에 나도 당신도 길들여지고 있는 건 아닐까?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30대 한 청년의 이야기가 단순히 가십 거리가 아닌 웃픈 이야기로 들린다면, 이 기회를 빌려 진짜 행복의 기준이 무엇인지 스스로 한 번쯤 묻길 바란다.

 

 

 

PF
서율
패션&라이프스타일매거진긱(GEEK) 에디터

● THE ReeAL MAGAZINE VOL.05 ESCAP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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