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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cape plan

alps

 

리얼매거진의 발행 주기는 약 석 달이다. 한 권을 마무리하면 다음 호가 나오기까지 약 석 달이 걸리는데 인간의 마음이란 이 석 달동안에도 수 많은 파도를 만나 오르락내리락 떠돌아다닌다. 리얼매거진의 발행은 내가 내게 지운 무거운 숙제지만 때로는 거친 풍파 속에 만난 라이프가드와도 같다. 어찌됐든 답이 없을 것 같은 상황에서도 무거운 숙제를 해결하고자 주변의 잔가지들을 정리하고 앞으로 나아갈 길을 만들게 되기 때문이다. 지난 석 달간 내 마음 속 최대의 화두가 무엇이었는지 곰곰이 생각해보니 다름 아닌 ‘탈출’이었다. 나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제약과 속박들로부터 상당히 지쳐 있는 상황이었고, 그렇다고 모든 연을 끊고 도망가버릴 수도 없는 상황. 그저 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사회를 살다보면 누구에게나 가끔 들이닥치는 ‘탈출에 대한 갈망’이 이번에도 어김없이 찾아온 것뿐이었다. 하지만 그렇다는 걸 알아도 견디기 힘들게 탈출에 갈증이 났다. 2호 작업 후 쓰러졌던 때 이상으로 정신적으로도 체력적으로도 소진이 심했다. 많은 것들에 의욕을 잃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다행히도 한겨울이었다. 나에겐 그래도 스노우보드가 있다. 직장을 다 니면서부터는 ‘a week five hours snowboarding’이라고 우스갯소리스런 나만의 슬로건을 만들어 어찌됐든 1주일에 최소 다섯 시간은 스노우보딩을 즐기고자 하는 나만의 다짐을 가지고 있다. 매주 토요일 새벽 차를 타고 가서 딱 다섯 시간을 타고 돌아온다. 다섯 시간을 넘어서면 체력이 떨어지면서 집중도 안 되고 즐거워야 하는 스노우보딩이 지루해지기 시작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정한 게 딱 다섯 시간이었다(라기보다 실은 어쩔 수 없이 셔틀버스 시간에 맞춘 거였지만).

시즌 초에는 겨울을 오래 기다려온 만큼 의욕이 과도하게 앞섰다. 스키장에 파크도 정식 오픈을 하기 전 무리를 하다 그대로 어깨가 빠져버렸다. 스노우보드를 타면서 다쳐본 건 일상다반사지만 다친 팔로 직장생활을 하기엔 이래저래 눈치가보였다. 눈치도 눈치고 다친 기간 동안은 스노우보드를 탈 수 없는 것도 괴로웠다. 어쨌든 바보같이 서두른 덕에 오히려 남들보다 조금 늦게 본격적인 시즌 스타트를 하게 됐고, 완벽한 회복도 아니었기 때문에 베이직을 좀 더 다져야 했다. 지난해부터 액션캠으로 가능한 한 매주 비디오를 찍어 SNS에도 게시하고 자세 등을 확인하는데 쉬지 않고 다니다 보니 어느새 등록된 비디오가 10편을 넘어가고 있었다. 일주일에 한편이니까……. ‘가만 보자. 우리나라 겨울이 몇 달이었지?’ 싶을 정도로 꾸준히 다니니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꽤나 스노우보드를 탈 수 있었다.

아무튼 그렇게 한 주 한 주 몸과 멘탈이 조금씩 회복되면서 갈망하던 나를 둘러싼 굴레들로부터의 ‘탈출’을 하고 싶었다. 별것 없었다. 주말 보딩 중 예전처럼 두려움 없이 공중에 내 몸을 던지는 것. 화려한 스핀 기술로 내 안의 갈증을 뱉어버리는 것. 뭐 일종의 그런 것들이었다. 하지만 무서웠다. 아무리 해도 ‘준비’는 부족한 것만 같았다. 그래서 그 다음부턴 ‘무리’를 하기로 했다. 시즌 초엔 무리해버린 덕에 다쳐버렸지만 그 이후론 너무 ‘안전’ 위주가 되어버린 것이었다. 그래서 베이직 기술을 ‘이만하면 되겠다.’ 하는 생각이 들 때까지만 해두고 그 다음부턴 아주 조금씩만 무리를 했다. 처음엔 계속 실패하고 넘어졌지만 괜찮았다. 오히려 상쾌했다. 또 시즌 초에 차라리 크게 다쳐둔 덕(?)에 넘어질 때도 다친 부위의 안전을 최우선시해서 비교적 안전하게 기술을 시도했다. 그렇게 꾸준히 최소한의 내가 원하는 것들을 하나둘씩 시도하다 보니 멘탈적인 빈틈을 견뎌낼 수 있는 용기가생겼다. 킥커 앞에 서서 잔뜩 쫄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던 내가 좀 더 자신감을 가지고 진입할 수 있게 됐다. 마음속으로는 무서워하는 내게 온갓 욕설을 내뱉으며 몸을 던졌다. ‘아, 맞다. 실은 내가 이랬는데’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일상 생활이든 스노우보딩이든 안전 제일주의로 현재의 삶을 유지할 것인지 한계를 깨고 다음 레벨로 나설 것인지 그만한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는 것은 같다. 위험을 감수해도 완전히 보장된 안전한 미래 역시 없다. 하지만 어쨌든 성공하든 실패하든 도전해볼 수 있는 기회는 위험을 감수하는 이에게만 주어진다. 나는 스노우보드를 매개체로 작은 한계를 깨고, 일상에서 탈출할 수 있는 기회도 얻었다. 다른 누군가에게도 내게 있어서의 스노우보드처럼 무엇인가가 있을 것이다. 저마다 삶 속 벽을 만나 힘에 버거운 시기가 있겠지만 추락하는 비행기 속 파일럿의 낙하산처럼 탈출안이 있다는 것은 매우 반가운 일이다. 물론 그 탈출이  언제나 안전하리란 보장은 없다. 하지만 적어도 추락하는 비행기 속에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앉아만 있다 가는 것 보다는 이래저래 낫지않을까?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탈출 안이 없다고? 그럼 만들어라. 그대로 추락하고 싶지 않다면.

 

 

 

alps_02
이원택
리얼맥 발행인 / 편집장

● THE ReeAL MAGAZINE VOL.05 ESCAP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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