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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복되는 일상 속 바다에서 새로운 것을 찾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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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국제시장>을 봤다. 우리의 아버지, 할아버지들이 살아왔고 겪어왔던 가슴 뭉클한 감동의 이야기. 물론 그때보다 이 시대는 좀 더 안전하고, 평화롭고, 편안해졌다. 하지만 여전히 그 이야기에 공감할 수 있는 이유는 어쩌면 우리 역시 후대에 이 시대의 어려움을 물려주고 싶지 않은 마음이기 때문이 아닐까.

월요일. 즐거운 월요일이란 없다. 이른 아침 자동차 경적 소리에 눈을 뜨고 아침을 거른 채 지하철에 탄다. 한 평 남짓 되는 나만의 공간에서 누구를 위한 일인지도 모르는 일을 하며, 반복되는 일상을 겨우 한 달 채우면 월급이란 보상을 받는다. 그 월급으로 카드 값을 내고, 남은 돈을 조금씩 모아 미래를 준비한다. 이것을 수 년 반복해 집을 장만하려하면 자금이 턱없이 부족해 은행 대출을 받고, 그 빚을 다 갚아갈 때쯤 현실의 목표였던 내 집 장만에 다다를 것이며 그때 쯤이면한가족을 꾸리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때, 한참을 달려온 길 모퉁이에서 삶을 되돌아볼 때쯤이면 어느덧 쏙 빼닮아버린 아버지의 삶을 보게 된다. 그 길은 이미 돌아갈 수 도 없고, 다시 시작할 수도 없다.

그 길이 우리 아버지들이 걸어왔던 길이고, 불행히도 우리가 앞으로 걸어야 가야만 하는 길이다. 그래서 우리에겐 이제 새로운 무언가가 필요하다. 힘들고 지쳤을 때 한순간의 회피가 아닌,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도 일생의 동반자처럼 함께할 수있는 그런 새로운 무언가.

나는 바다에 산다. 오랫동안 이곳에 살아왔고, 앞으로 다른 곳으로 가게 되더라도 그 곳에는 바다가 있을 것이다. 바다가 있는 곳에서 태어나 지금껏 바다에 살고 있지만 한결같이 늘 이곳에 있었던 것만은 아니다. 나도 ‘서울 생활’, ‘회사원’ 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잠시나마 흔한 일상을 경험해 봤다. 물론 본인의 의지로 끝까지 버티지 못하고 새로운 것을 찾아 다시 바닷가로 돌아왔지만……. 사실 버티지 못한 것이 아니라 버티고 싶지 않았다는 것이 더 맞는 표현일지 모르겠다. 하지만 불행히도 바다로 돌아왔다고 지루하게 반복되는 일상이 없어지는 건 아니다. 이곳에서도 아침에 눈을 뜨면 일을 시작하고, 해가 질 무렵 집으로 돌아간다. 내 집을 마련하기 위해 돈을 모으고, 가끔 일상이 지루해지면 다른 곳으로 떠나기도 한다.

그래도 좋은 이유가 있다면, 바다가 나에게 새로운 것을 선물해주리라는 걸 알고 있다는 점이다. 난 오랜 시간 서핑을 해왔다. 서핑은 나에게 마치 오랜 벗처럼 편안함을 주고, 지친 일상 속에 활력을 준다.

서핑이 이미 트렌드화 되어있는 지금,서핑을 접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전화 한 통화로 필요한 정보를 얻을 수 있고, 조금만 검색을 해 보면 어디서 어떻게 누구와 함께 할 수 있는지 쉽게 찾을 수 있다. 이미 전국적으로 많은 서프샵이 생겨서 조금만 시간을 내면 누구나 쉽게 시작할 수 있다.

매주 떠나지 않아도 되고, 한 달에 한 번이 아니어도 좋다. 단 하루만 나 자신에게 새로운 것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선물해보자. 서핑을 잘하지 못해도 좋다. 북적대는 한여름의 넘실대는 파도, 사람들 틈, 가만히 보드 위에 앉아있는 것만으로 좋다. 그곳에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게 될 것이다. 공부에 지친 학생, 잠시 휴가를 나온 군인, 몇 년만에 여행을 떠나 온 주부, 금전적, 시간적 여유가 많은 어느 대기업의 임원 등 많은 사람들이 명함 대신 보드 한 장을 들고, 멋진 정장 대신 서프 슈트를 입고 당신에게 먼저 인사할 것이다. 그 순간 만큼은 서로에게 무슨 이유로 이 곳에 왔는지, 사회적 지위가 무엇인지는 궁금해 하지 않는다. 이 모든 것들은 당신이 일상에서 접해볼 수 없는 경험과 사람들이 될 것이고, 그것은 분명 새로운 자신을 찾을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그렇게 사람들과 함께 파도를 기다리며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얻는다.

이런 순간들은 여전히 진부하지 않고 오히려 더욱 새로운 것들을 계속해서 가져다준다. 이곳을 찾는 새로운 사람들, 한적한 곳에서의 매번 새로운 파도. 이런 순간들이 좋아 난 지금도 바다를 떠날 수 없다. 나의 일상과 현실은 쉽사리 바뀌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도망갈 수도 없다. 꿈은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에 꿈일 뿐이다. 여유롭게 돈을 벌어 바닷가에 별장을 짓고, 풍요로운 삶을 살아가는 그런 꿈은 아마 이루어질 수 없을 것이다. 행여나 그 꿈이 이루어진다면 또다른 현실을 마주해야 하며 그때쯤이면 또 다른 꿈을 찾게 될 것이다. 끝없는 현실 속에서 나에게 새로움을 선물해줄 수 있는 기회를 바다에서 찾아보는 것은 어떨까? 바다에서 무엇을 할 것인지, 무엇을 경험하게 될 것인지는 나중에 생각해도 좋다. 당장 중요한 것은 당신이 지금 바다로 떠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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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용
서퍼스 대표

● THE ReeAL MAGAZINE VOL.06 BAR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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