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짬짜면

대한민국에서 선택의 자유는 한정되어 있다. 내 나이 또래라 면 대부분 학창 시절 행해진 복장 검사 때문에 개인의 스타일을 선택할 수 없었다. ‘학업에 지장이 있다.’ 내지는 ‘불량스러워 보인다.’는 전혀 설득력 없는 이유들을 강제로 납득(당)하고, 지도라는 명목 아래 때로는 물리적인 폭행마저 당해가며 선택의 자유를 박탈당했다.

20대가 된 친구들은 미래의 방향을 선택하기 전에 국방의 의무라는 시한폭탄을 건네 받았고, 모두 먼저 풀어야 할 그 숙제를 해결하러 떠났다. 여성이라고 자유롭지는 않다. 취업이나 진로에는 늘 언제 무엇을 기준으로 정해졌는지 모를 ‘적절한 시기’ 란 게 있어 배우자의 수준과 결혼의 시기, 출산까지 ‘적절한 시기’에 맞추기 위해 행동하게 만든다. 그러는 동안, 개인의 선택이란 의미 없는 단어가 되어버렸다.

왜 나는 머리카락을 땅바닥에 닿을 때까지 기른 채 등교해보지 못했으며, 머리칼을 핑크색으로 물들인 채 수업을 듣지 못 했고, 힙합 바지를 질질 끌며 하교하지 못했는가? 창업의 꿈에 부풀어 있던 친구는 왜 펜과 계산기 대신 총과 수류탄을 쥐어야 했으며, 억대 연봉을 협상하며 앞날이 창창하던 스포츠 선수는 왜 2년 후 권리금 걱정을 하며 식당을 차릴 수 밖 에 없었는가……?
그렇게 선택의 ‘권리’와 ‘자유’ 혹은 다양한 선택으로 발생할 수 있었던 ‘가능성’ 그 자체를 모두 어릴 적부터 결핍당한 채 성인이 되어버린 무리들을 만날 때, 답답함을 느낀다. 그리고 다시 그들과 똑같이 성장해가는 아이들을 볼 때 이루 다 말할 수 없는 아쉬움을 느낀다. 얼마 전 본 TV 프로그램에서는 이런 이야기가 나왔다. ‘최근의 젊은이들은 선택을 두려워한다. 그래서 계속해서 선택을 피하거나 유예하는데, 그것은 본인의 선택으로 인해 맞이하게 될 결과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라는 논조였는데 나는 이 이야기에 극히 공감한다. 우리는 실로 그럴 수밖에 없는 구조 속에서 자라왔지 않은가?

우리는 부모와 학교, 국가의 과도한 걱정과 개입으로 어릴 적 부터 선택이란 것을 통해 응당 경험했어야 할 책임과 실패, 보상과 수습이라는 개념을 이해하지 못한 채 어른이 되었다. 그러나 어른이 되어서도 ‘적절한 시기’라는 기준에 맞춰 살아간다면 전혀 문제될 것이 없는 게 ‘일반적인 한국인의 삶’이다. 아니, 문제가 없는 수준이 아니라 가장 모범적인 답안이 되어버린다. 그런 삶을 사는 이에게 갑자기 주체적인 선택을 하라고 한다면 그것은 당연히 자유나 권리가 아닌 숙제와 압박이 되어버린다.
그 TV 프로그램에서는 이런 이야기도 나왔다. “선택의 유예와 회피의 예는 우리의 삶 속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중국집을 찾았을 때 짜장면을 택할지 짬뽕을 택할지는 늘 고민의 대상이다. 그래서 등장한 궁극의 메뉴가 바로 짬짜면이다. 하지만 이건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다. 짜장도 짬뽕도 선택하지 않았으니 말이다. 막상 짬짜면을 먹으면 욕구가 해결되는가? 아니다. ‘차라리 짬뽕을 시킬걸.’ 아니면 ‘그냥 짜장 먹을걸.’ 하는 경우가 많다.”는 내용이었다.

반쯤은 웃어넘길 수 있는 예지만, 과연 나에게는 얼마나 많은 선택의 기회가 주어져 있을까? 곰곰이 생각해보니 나나 나를 둘러싼 주변인들은 그래도 자신이 선택한 삶을 살아가고 있더라. 때로는 일반적이지 못한 행색으로 오해나 비합리적인 대우를 받을 때도 있지만 그 역시 자신의 선택 후에 따라오는 선택의 대가이며, 선택이란 건 애당초 그 모든 것을 고려한 결과이다. 선택의 자유가 주어졌다면 그 이후의 책임 역시 본인의 몫. 짬짜면이 나에게 행복을 안겨주지 못하듯이 실패가 두려워 선택을 유예하거나 회피한다고 내 삶이 나아지지는 않음을 알고 있는 거다. 어쨌든 나는 남들과 조금 다르게 산다. 때로는 이런 삶의 방식이 매우 혹독하지만 그래도 나는 내가 선택한 삶을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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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택
리얼매거진 발행인 / 편집장

● THE ReeAL MAGAZINE VOL.07 CHOI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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