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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rfing Kills

많은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호주 유학생이었다. 경치 좋고 살기 좋은 동네에서 나름 좋은 학교를 다녔다. 하지만 정작 나는 가난했다. 학교에 가서 공부를 하고 돌아와서는 과제를 하면서 나 나름대로의 삶 역시 꾸려가야 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일자리를 찾았고, 늘 학업과 일을 병행했다.

내가 기억하는 나는 그다지 부지런한 타입이 아니었다. 일찍 일어나는 것이 너무 두려웠고, 유난히 엄격했던 어머니가 고등학교 시절의 아침 기상 시간 알람으로 틀어놓으셨던 라디오 CM송이 너무 싫어서 트라우마가 생길 정도였다. 부지런히 어디를 찾아다니지도 않았고 좋아하는 일이 아니면 특별히 궁금하지도 않았다.

그렇게 매일매일 일과 학업에 치여 쳇바퀴 도는 하루를 살아 가던 내 삶에 어느날 큰 변화가 찾아왔다. 정확히는 기억나지 않지만, 초등학생 때 TV에서 보았던 유치찬란한 ‘노스 쇼어(North Shore)’라는 서핑 영화에서 받은 인상은 늘 내 머리 속에 날카로운 기억으로 남아 서핑을 동경하게 하곤 했다.

그런데 어느날,우연히 그 서핑을 시작하게 됐다.

우연찮게 시작한 이 서핑은 내 삶을 송두리째 바꿔버렸다. 내가 하는 행동과 생각의 모든 ‘동기’가 서핑이 됐다. 내 팍팍했던 유학 생활도 서핑과 함께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다. 학교는 일주일에 두어 번만 가도록 스케줄을 조율했고, 아르바이트도 야간에만 했다. 해가 긴 여름날에는 학교를 마치고 맥주 한 잔을 권하던 친구들을 뒤로하고 페리내가 살던 시드니 시내에서 맨리까지는 꼭 이 페리를 타야했다를 타고 바다를 건너 또 다른 바다로 향했다.

서핑하기 전날은 술 한모금 마시지 않았다. 일찍 일어나기 위해 연세 부쩍 드신 어르신처럼 일찍 잠을 청하고, 서핑 여행을 떠나기 위해 방학 중 하루에 6시간만 자가며 20시간 가까이 3가지 아르바이트를 한 적도 수없이 많았다. 이렇게 서핑은 나를 새로운 사람으로 만들어주었다. 그 어떤 강요도 없었다.

서핑을 만난 이후로 일찍 일어나는 일이 두렵지 않게 됐고, 구두쇠였던 나에게 비싼 서핑 장비는 어쩔 수 없이 필요한 것들이 되어 본의 아니게 럭셔리 가이가 되어버렸다. 모든 생각과 생활이 서핑을 중심으로 돌아가기 시작했고, 회계학을 전공하여 CA(Chartered Accountant) 회계사의 길을 가려던 나는 현재 한국에서 서프샵을 운영한다. 매일 구두가 아닌 운동화를 신고, 서류 가방이 아닌 천으로 된 가방을 메고 바다에 흠뻑빠져 있는 내 일터로 향한다. 서핑이라는 이 마약 같은 동기 때문에.

 

 

prf
송민
미노스서프 파운더

● THE ReeAL MAGAZINE VOL.10 MOTIV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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